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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8천 건의 민원을 넣던 할머니가 영어를 배운 이유
2. 옥분의 과거와 2007년 미국 의회 결의안
3. 미국 의회 증언이 남긴 의미와 우리의 역할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구청에 민원을 넣는 할머니와 젊은 공무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웃음을 주지만,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는 한 사람의 아픈 과거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1. 8천 건의 민원을 넣던 할머니가 영어를 배운 이유
나옥분은 동네에서 잘못된 일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위험한 시설이나 불편한 점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고 구청을 찾아간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접수한 민원이 약 8천 건에 이른다. 구청 직원들은 옥분이 나타나면 피하려 하지만, 옥분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새로 부임한 9급 공무원 박민재는 옥분의 민원을 규정대로 처리하려 한다. 당장 해결해 달라는 옥분과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민재는 만날 때마다 다툰다. 두 사람이 서로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은 영화 초반의 웃음을 만든다.
하지만 구청 밖에서 만난 옥분은 다른 모습이다. 시장에서 옷을 수선하며 살아가는 옥분은 이웃의 일을 잘 챙긴다. 특히 민재의 동생 영재에게 따뜻하게 대해 준다. 민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옥분을 단순히 귀찮은 민원인으로만 볼 수 없게 된다.
옥분에게는 꼭 이루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다. 학원에 다니지만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렵고, 열심히 외운 문장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래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민재가 외국인과 영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옥분은 그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민재도 결국 옥분과 함께 공부하기 시작한다.
수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옥분은 같은 발음을 여러 번 연습하고, 민재는 할머니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반복한다. 두 사람은 여전히 다투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처음에는 옥분이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옥분에게 영어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자신의 목소리로 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였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화 초반의 영어 수업도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웃음을 주던 장면들이 사실은 옥분이 중요한 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2. 옥분의 과거와 2007년 미국 의회 결의안
옥분은 어린 시절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당시 피해자들은 전쟁 중 겪은 고통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러 어려움을 마주해야 했다. 피해 사실을 공개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고, 사회적으로도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시간이 길었다.
옥분은 시장에서 일하고 이웃들과 어울리며 살아왔지만, 마음속에는 쉽게 꺼내지 못하는 과거가 남아 있었다. 오랜 친구 문정심 역시 같은 피해를 겪은 사람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같은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월을 견뎌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2007년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결의안 121호를 공식 채택한 사건이다.
이 결의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부' 제도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이 문제를 미국 사회와 의회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영화와 실제 역사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옥분과 민재가 영어 수업을 통해 가까워지고, 옥분이 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증언하는 과정은 실제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와 영화에 맞게 구성한 이야기다.
실제 결의안이 채택되기까지는 여러 피해 생존자와 시민단체, 관련 인사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영화 속 한 사람의 증언이 그 모든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면 옥분이 영어 공부에 매달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옥분은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눈여겨볼 점은 옥분의 평범한 일상을 먼저 보여준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일하고 이웃을 챙기는 모습이 충분히 그려졌기 때문에, 뒤늦게 밝혀지는 과거도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으로 다가온다.
3. 미국 의회 증언이 남긴 의미와 우리의 역할
옥분이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동안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많은 사람 앞에 서자 준비한 말을 쉽게 시작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감춰 두었던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옥분에게는 어린 시절의 고통을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직접 설명해야 하는 자리다. 영어 발음보다 더 큰 어려움은 그 기억을 마주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민재는 옥분에게 힘을 보탠다. 영화 초반에 두 사람은 민원 때문에 서로를 귀찮아했다. 하지만 이제 민재는 옥분의 사정을 알고,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재가 옥분을 대신해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옥분이 직접 말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응원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옥분이 마침내 입을 열면서 영화 제목인 '아이 캔 스피크'의 의미도 분명해진다. 영어로 말할 수 있다는 뜻을 넘어, 이제는 자신의 경험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옥분이 특별한 영웅처럼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옥분은 동네의 잘못된 일을 지적하고, 시장에서 일하며, 이웃을 챙기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일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영화 초반에 옥분이 구청에 민원을 넣던 모습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동네의 작은 문제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 자신의 가장 아픈 경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침묵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는다.
민재의 변화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처음에는 옥분을 민원이 많은 할머니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활과 과거를 알게 된 뒤에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 시작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면 그 사람의 사정을 모두 알기 어렵다. 조금 더 듣고 알아가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또한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단순히 안타깝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무엇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잘못된 일이 잊히지 않도록 관심을 갖는 태도도 필요하다.
<아이 캔 스피크>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거운 역사를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한 사람의 일상과 관계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옥분이 영어를 배운 이유를 알고 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