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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캐서린이 우주선의 길을 계산하며 넘은 벽

2. 도로시가 컴퓨터를 배우고 동료들의 자리를 지킨 방법

3. 메리가 교실 문을 열고 세 여성이 남긴 변화

영화 < 히든 피겨스 > 포스터

 

1960년대 초, 미국과 소련은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NASA에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흑인 여성들이 있었다. 캐서린은 우주선의 비행 경로를 계산하고, 도로시는 새로운 컴퓨터 기술을 배운다. 메리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백인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세 여성이 차별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해낸 이야기다.

1. 캐서린이 우주선의 길을 계산하며 넘은 벽

영화는 출근하던 세 여성이 자동차 고장으로 길가에 멈춰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찰이 다가오자 괜히 긴장하게 되지만, 세 사람이 NASA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 장면부터 당시 흑인 여성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았는지 조금씩 알 수 있다.

 

캐서린 존슨은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이다. 복잡한 계산도 빠르게 풀어내는 능력을 인정받아 우주 비행 계획을 세우는 부서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사무실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대부분 남성인 직원들은 캐서린을 동료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기도 어렵고, 필요한 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도 생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화장실 장면이다. 영화에서 캐서린은 흑인 여성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비가 오는 날에도 한참을 뛰어가야 한다. 상사가 왜 자리를 오래 비우는지 따지자 캐서린은 그동안 참았던 불편함을 털어놓는다. 결국 상사는 화장실의 차별 표지를 없앤다.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다. 우주선을 보내기 위해 어려운 계산을 하는 사람이 정작 화장실 하나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실제 캐서린이 영화처럼 매일 먼 화장실을 오간 것은 아니다. 당시 존재했던 인종차별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장면이다.

 

캐서린의 능력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순간은 우주 비행사 존 글렌의 비행을 준비할 때다. 영화에서 존 글렌은 새 컴퓨터가 계산한 수치를 캐서린에게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캐서린은 복잡한 계산을 직접 검토하고, 우주선이 안전하게 돌아오는 데 필요한 수치를 확인한다.

 

실제로도 존 글렌은 캐서린에게 계산을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영화처럼 발사 직전에 급하게 계산한 것은 아니고, 미리 시간을 들여 검증한 작업이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캐서린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새삼 느껴졌다. 처음에는 회의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웠던 사람이 나중에는 우주 비행사가 직접 계산을 믿고 맡기는 사람이 된다. 캐서린은 처음부터 실력이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 실력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2. 도로시가 컴퓨터를 배우고 동료들의 자리를 지킨 방법

도로시 본의 이야기는 캐서린과 조금 다르다. 캐서린이 자신의 수학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도로시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미래까지 걱정한다.

 

영화 초반 도로시는 흑인 여성 계산원들의 일을 사실상 관리하고 있다. 누가 어떤 일을 맡을지 정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지만, 정식 관리자라는 직책은 받지 못한다. 상사에게 여러 번 승진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NASA에 커다란 IBM 컴퓨터가 들어온다. 기계가 사람보다 빠르게 계산할 수 있게 되면 기존 계산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는 상황이다. 도로시는 이 변화를 그냥 기다리지 않는다. 컴퓨터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알아보고 직접 배우기 시작한다.

 

도서관에서 프로그래밍 책을 찾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에서 도로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들이 이용하는 구역에서 책을 읽지 못한다. 결국 책을 가지고 나와 공부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시는 포트란이라는 컴퓨터 언어를 익히고, 새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문제를 해결한다. 혼자 공부한 내용을 동료들에게도 알려준다. 자신만 컴퓨터를 다룰 줄 알게 되면 더 좋은 자리를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도로시는 함께 일하던 여성들도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나중에 컴퓨터를 다룰 인력이 필요해지자 도로시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도로시는 자신만 새로운 부서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도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여성이 나란히 새로운 업무 공간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그래서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실제 도로시 본은 영화 속 이야기보다 훨씬 이른 1949년에 이미 관리자가 되었다. NASA의 전신인 NACA에서 흑인 여성 최초로 관리자가 되었고, 이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동료들을 이끌었다. 영화는 서로 다른 시기에 있었던 일을 한 시기에 모아 보여준 것이다.

 

도로시의 이야기를 보면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생각하게 됐다. 컴퓨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만 하는 대신 직접 배우고 준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배운 것을 동료들에게 나눠 주는 모습이 좋았다. 혼자 성공하는 것보다 함께 일할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3. 메리가 교실 문을 열고 세 여성이 남긴 변화

메리 잭슨은 세 사람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가장 분명하게 말하는 인물로 느껴졌다. 부당한 일을 겪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직접 행동한다. 메리는 NASA에서 일하면서 엔지니어가 될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정식 엔지니어가 되려면 추가로 공부해야 할 과목이 있다. 문제는 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교가 당시 백인 학생들에게만 허용된 곳이라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메리는 법원을 찾아가 판사에게 야간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판사는 처음에 난처해하지만, 메리는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차분하면서도 당당하게 설명한다. 결국 수업을 들을 기회를 얻는다. 메리가 교실에 처음 들어가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모두 백인 남성이다. 낯선 시선이 느껴지는 상황이지만 메리는 돌아가지 않는다. 공부하기 위해 그곳에 왔고, 자신에게 필요한 수업을 듣겠다는 마음이 분명해 보인다.

 

실제 메리 잭슨도 특별 허가를 받아 당시 백인 학생들이 다니던 햄프턴 고등학교에서 필요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1958년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었다. 다만 영화 속 판사와의 대화는 실제 과정을 바탕으로 극적으로 꾸민 장면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보고 나니 각자 해결해야 했던 문제가 달랐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캐서린은 중요한 계산을 하면서도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웠고, 도로시는 동료들을 이끌면서도 제대로 된 직책을 인정받지 못했다. 메리는 능력이 있어도 필요한 수업을 듣는 것부터 허락받아야 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세 사람 모두 이미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부족한 능력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쉽게 얻지 못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 우주선 발사가 성공하는 장면은 물론 감동적이다. 하지만 나는 발사 장면만큼이나 캐서린이 계산하던 모습, 도로시가 컴퓨터 책을 펼치던 모습, 메리가 교실에 들어가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우주 개발이라고 하면 보통 우주 비행사나 거대한 로켓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그 뒤에는 수많은 계산을 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자신의 일을 해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도 있었다.

 

<히든 피겨스>를 보고 나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도 미처 주목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은 특별한 대우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능력을 판단할 때 성별이나 피부색 같은 조건부터 보지 않고,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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